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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7세 즉위봉 컨텐츠 영역

에드워드 7세 즉위봉 1901

영국 통치권과 함께 선사 받은 진품

지금부터 110여 년 전인 1901년. 빅토리아 여왕의 죽음으로 인도왕국을 통치하게 된 에드워드 7세(Edward VII)가 통치권을 물려받으며 함께 선사 받은 국왕의 홀입니다. 60세에 영국의 국왕으로 즉위한 에드워드 7세는 청년 시절부터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스포츠, 문화, 사회 다방면으로 견문을 넓혔습니다. 즉위 당시, 1차 세계대전 발발을 앞두고 긴장된 관계 속에서도 1904년 영국-프랑스 협상, 1907년 영국-러시아 협상체결을 이끌며 국제 외교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약 25인치(64cm)길이에 정교한 금과 은으로 덮인 왕관. “이 날이 에드워드의 장엄한 인디언 왕권지배력을 기리는 날로 지정했다” 라는 내용의 선언문과 사진이 110년 전 그 순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켄싱턴 호텔 1층 로비에 전시중입니다.

웨버피아노 영역

130년 전통 웨버피아노

창립자 <알버트 웨버>가 직접 만든 왕실의 피아노

1875년부터 1880년대에 만들어진 일련번호 <10122>가 붙어있는 웨버피아노입니다. <웨버피아노>는 1828년 독일 바바리아 지방에서 태어난 연주가 알버트 웨버가 스물다섯 살이 되던 1852년,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미국 White st. Newyork에 만든 브랜드입니다.   코끼리 상아로 만들어진 건반과 독일산 뢰슬러 강선만을 사용한 피아노. 정확한 음정과 오랜 기간 변치 않는 내구성으로 세계박람회(1876 필라델피아, 1887 런던, 1989 파리)에서 메달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피아노 브랜드로 성장했습니다.   웨버 피아노의 명성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 최고조에 달해 서유럽과 북유럽 왕실의 공식 피아노로 지정되었을 당시 1,400달러를 호가했습니다. 이는 빅토리아 시대 대저택에 버금가는 금액으로 상류층과 귀족 외에는 구입이 불가할 정도였습니다.   1987년 우리나라 영창악기에서 인수해 세계시장에 상표출원 후 세계 각국에 공급되고 있으며 세계 최고의 아트센터 <뉴욕링컨 센터> 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웨버피아노를 공식 사용하고 있습니다.  

켄싱턴 호텔 1층 <필링스> 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층버스 (루트마스터) 컨텐츠 영역

이층버스 (루트마스터)

영국 거리를 활보하던 그 모습 그대로

“영국서도 보기 힘든 이층버스가 호텔 앞에?” 방문했던 사람들이 두고두고 기억하는 켄싱턴스타호텔의 대표명물. 빨간 이층버스의 원조 (루트마스터)입니다. 빅벤, 버킹엄궁과 함께 반세기가 넘는 오랜 기간, 런던 시민과 관광객의 사랑을 받아온 영국의 상징. 런던 시내 곳곳을 누비고 다니던 2천 700여 대의 루트마스터(Routemaster)는 1954년 7월 24일 처음 탄생했습니다. 완전 개방형 출입구와 손님의 차비를 직접 받는 모자 쓴 차장, 2층으로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으로도 유명한 이층버스는 유지보수 비용과 안전을 이유로, 2005년 12월 운행이 중단되었고 현재 일부 관광노선만 운행되고 있습니다. “호텔의 셔틀버스 인가요?” 아쉽게도 현재 루트마스터에는 엔진이 없습니다. 영국에서 직접 공수, 한달 이라는 항해 끝에 부산항에 도착했지만 우리나라 도로법상 엔진을 제거하고 육교가 없는 육로를 통해서만 운반할 수 있었습니다. 부산항에 도착한지 2박 3일 만에 호텔 입성. 움직이지 않아서 더 귀한 이층버스입니다.

켄싱턴 호텔 입구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켄싱턴 북카페 영역

켄싱턴 북카페

설악에서 만나는 중세 영국 왕실의 서가

영국 왕실 서가를 재현한 켄싱턴 스타호텔의 명소입니다. 갑옷을 입은 기사와 벽난로, 3점의 기사 그림, 고풍스러운 지구본, 책 장식으로 가득 찬 서가에서 중세 영국 왕실의 품위를 느끼실 수 있습니다.   갑옷 입은 기사는 검과 청동 갑옷으로 무장한 모습으로 입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는 실제로 중세시대 영국 기사들이 입었던 청동 갑옷을 재현한 것으로 외국에서 제작, 공수한 것입니다.   벽난로가의 안락의자는 켄싱턴 스타호텔에서 가장 유명한 포토존입니다. 켄싱턴 스타호텔을 찾으신 수많은 대사와 스타, 명사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한 곳이기도 합니다.   천체 지구본은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것입니다. 나무로 만들어진 이 지구본의 특징은 뚜껑이 열리고 내부에 12궁도 별자리가 그려져 있다는 점입니다. 유럽인들이 천문학적인 조예가 깊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사를 그린 3점의 유화는 북카페 곳곳에 배치되어 있으며 중세 영국의 고즈넉한 멋을 더합니다. 특히 금발의 기사를 묘사한 작품은 1965년에 그려진 것으로 중세 기사의 복식을 섬세하게 묘사해 미술학적 가치가 높습니다.

켄싱턴 호텔 1층 <북카페> 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왕실의 연하장 컨텐츠 영역

왕실의 연하장

영국의 로열 패밀리가 보내온 크리스마스 카드

조지 6세의 친필 사인과 영국 왕실의 인장이 찍혀 있는 크리스마스 카드입니다. 밀리터리 유니폼을 입고 있는 조지 6세와 엘리자베스 왕비, 엘리자베스 공주와 마가릿 로즈 공주가 함께 한 흑백 가족사진이 담겨있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와 필립공, 찰스 왕세자와 앤드류 왕자, 앤 공주의 모습이 담긴 카드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재임 7년째 해였던 1960년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카드입니다. 성 앞의 넓은 뜰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이 몹시 아끼던 애완견 웰시 코기와 함께 찍은 가족 사진은 왕실 가족의 단란한 한 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 세계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다이애나비와 찰스 왕자 커플로부터 온 카드도 있습니다. 1984년 9월 15일 생인 해리 왕자의 탄생 후 얼마 지나지 않은 1984년 크리스마스에 (Mr and Mrs Muir)에게 보내진 카드로 로열 패밀리의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켄싱턴 호텔 2층 (더 퀸)에 전시중입니다.

조지 6세의 친필 편지 컨텐츠 영역

조지 6세의 친필 편지 1946

영화 <킹스 스피치>의 주인공

1936년부터 1952년 까지 재위한 조지 6세의 친필 서명 편지입니다. 과실치사 죄로 18개월 형을 선고받은 토마스 리치의 남은 형량을 면제해 준다는 내용입니다. 조지 6세는 조지 5세의 차남이며 현재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의 아버지입니다. 2011년 3월 개봉한 콜린퍼스 주연의 (킹스 스피치)의 실존인물이기도 합니다. 조지 6세는 형인 에드워드 8세가 미국 출신의 미망인 심슨부인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를 포기하자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후 조지 6세는 국왕으로서의 중책을 훌륭히 수행했습니다. 프랑스, 캐나다, 미국 등을 순방하면서 국제 친선에 힘을 기울였으며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런던을 떠나지 않고 국민들의 곁을 지켰습니다. 이로 인해 국민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받았으며 죽는 순간까지 왕실 규범을 준수한 모범적 군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켄싱턴 호텔 2층 (더퀸)에 전시중입니다.

세기의 부부 컨텐츠 영역

세기의 부부 1985

영화 (킹스 스피치)의 주인공

1985년에 촬영된 이 사진에는 행복하게 미소짓는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모습이 돋보입니다. 사진 하단에 나란히 적혀있는 자필 사인에는 부부의 돈독함도 눈에 띕니다. 다이애나는 1961년 명문 스펜서 백작가의 1남 3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귀족 출신이지만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유치원의 보모로 일하던 다이애나와 찰스 왕자의 결혼은, 20세기의 동화라 불리며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습니다. 1981년 7월, 영국의 세인트 폴 성당에서 전세계 70억 인구가 지켜보는 가운데 두 사람의 결혼식이 거행됐습니다. 윌리엄과 해리, 두 왕자를 두었지만 1996년 8월 파경을 맞이합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결혼하기 전의 이름인 다이애나 스펜서를 되찾으면서 왕세자비와 왕족의 지위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제2, 제3의 왕위계승권자인 월리엄과 해리왕자의 어머니로서 왕실가족으로 대우를 받았으며 웨일즈의 공주(The Princess of Wales)라는 공식 직함은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켄싱턴 호텔 2층 (더퀸)에 전시중입니다.

윈저공작 부부영역

윈저공작 부부

패셔니스타 부부의 사진과 친필 사인

윈저 공작과 부인의 단란한 모습을 담은 사진과 친필 사인입니다. 윈저 공작 부부는 왕위를 버린 세기의 사랑 외에도 뛰어난 패션 감각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는 20세기 남성 패션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 중 한 명으로 윈저 타이 노트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당시 남자들이 입지 않던 페일 아일 스웨터를 레이어드하고, 체크 온 패션을 시도한 최초의 남성이었다고 합니다. 윈저 공작 부인은 브라질 디자이너 이사 헬라옐의 컬렉션 뮤즈로 꼽힐 만큼 대단한 패션 감각을 가진 인물입니다. 특히 결혼식 때는 순백의 드레스 대신 블루 드레스를 입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푸른 색은 부인의 패션감각을 보여주는 색이자, 부부의 사랑을 의미하는 색이었습니다. 첫 만남, 결혼식, 남편의 장례식과 자신의 마지막 순간까지 윈저 공작 부인은 둘의 사랑을 생각하며 블루 드레스를 입었다고 전해집니다.

켄싱턴 호텔 2층 (더퀸)에 전시중입니다.

에드워드 8세의 사인 영역

에드워드 8세의 사인 1945

왕위를 버리고 사랑을 택한 로맨티스트

1945년 8월 2일 왕좌에서 물러난 후 작성된 에드워드 8세의 사인입니다. 에드워드 8세는 조지 5세의 맏아들이자 엘리자베스 여왕 2세의 삼촌으로 영국 역사상 가장 짧은 재위기간(1936년 1월 20일~12월 10일, 325일)을 가진 왕입니다. 독신이었던 그는 미국 출신의 이혼녀 심프슨 부인과 결혼하기 위해 1936년 12월 10일 왕위를 버립니다. 당시 영국은 남편이 살아있는 이혼녀의 재혼을 부정한 것으로 여겼기에, 두 번 이혼한 심프슨은 환영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영미 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 여성이 영국 여왕이 된다는 것은 정부의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결국 에드워드 8세는 왕위를 버리고 윈저 공이 되었으며, 1937년 6월 3일 심프슨 부인과 프랑스에서 결혼식을 올립니다. 윈저 공작 부부는 영국 정착 금지령으로 프랑스에서 망명 생활을 했으며, 30년이 지나서야 왕실의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들은 35년간 해로했으며 오늘날까지도 (20세기를 대표하는 세기의 사랑)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켄싱턴 호텔 2층 (더퀸)에 전시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