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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좋은 대통령의 방 컨텐츠 영역

전망좋은 (대통령의 방)

권금성과 달마봉이 12첩 병풍처럼

1977년. 우연히 설악산을 찾게 된 박정희 대통령은 외설악 권금성의 풍광에 압도되었습니다. 그래서 탄생하게 된 것이, 켄싱턴스타호텔의 전신인 <뉴설악 호텔> 설악산 5분 거리에 위치한 국립공원 부지로 설립 허가가 불가능했음에도 호텔이 세워질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이 설악산을 방문할 때마다 어김없이 머물다 가던 곳이 바로 <대통령 전용룸>입니다. 그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가구는 물론 인테리어도 그대로 보존해 두었습니다. 그 중 최고의 압권으로 손꼽는 것이 한실로 꾸며진 응접실에서 바라보는 설악의 비경입니다. 사방을 둘러싼 두께 5cm의 방탄유리는 10m거리에서 총으로 저격해도 안전하다고 합니다. 1994년 대한민국 최초의 남북 정상급 회담이 이루어진 역사적인 장소 역시 이곳이었습니다. 34년 전 국가원수만 누릴 수 있었던 감흥. 매일 오전 10시 비피터 투어를 통해 직접 경험해 보실 수 있습니다.

켄싱턴 호텔 6층 (프레지덴셜 스위트)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봉황문과 맞춤 침대 컨텐츠 영역

봉황문과 맞춤 침대 1978

국내호텔 유일의 대통령 전용문

봉황새는 고대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서조(瑞鳥)입니다. 열 가지 동물의 장점을 갖춘 신성한 새로, 1967년 박정희 대통령의 공고로 대통령의 표장이 되었습니다. 1978년 뉴설악 호텔이 프레지덴셜 룸을 건축하며, 대통령의 표장인 수컷 봉과 암컷 황을 새겨 넣었습니다. 봉황문은 지속적인 관리로 3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변함 없이 당당한 모습을 보입니다.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대통령의 방 주변 4개 룸은 모두 경호원의 숙소로 사용했으며 경호실 밖에는 철문을 두어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였습니다. 대통령의 방에는 165cm 미만이었던 대통령의 신장을 고려해 제작한 맞춤 침대가 있습니다. 가로 200cm, 세로 200cm로 일반 퀸 사이즈의 비율(3:4)보다 세로의 비율의 적습니다. 헤드보드는 가로 370cm, 세로 215cm 로 일반 사이즈(155cm * 350mm)에 비해 높게 제작해 대통령의 품격을 높였습니다. 현재 구비되어 있는 침대는 1996년 이랜드가 호텔을 인수하면서 교체한 것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방을 보존하기 위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쓰던 침대와 같은 사이즈로 제작하였으며 신장이 큰 투숙객들을 위해 추가로 매트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켄싱턴 호텔 6층 (프레지덴셜 스위트)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주목나무 테이블 컨텐츠 영역

주목나무 테이블

500년 역사의 호텔 최고령 소품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말로 유명한 주목나무. 주목(朱木) 혹은 적목(赤木)은 껍질뿐만 아니라 속살도 유달리 붉기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활'이라는 속명은 이 나무로 활을 만들어 사용했다는 데서 유래됐습니다. 10년 동안 1m만 자랄 정도로 성장이 더디기 때문에 1,2000그루에서 불과 2kg남짓만 추출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목질(木質)이 치밀하고 탄성이 강할 뿐 아니라, 광택과 향기가 고급스러워 조각예술 재료로 많이 사용되며 주목으로 만든 바둑판은 수천 만원을 호가하기도 합니다. '대통령의 방' 거실에 있는 가로 126cm 세로 157cm 높이 36cm의 주목나무 테이블은 그 중에서도 가장 귀하다는 뿌리 부분으로 만들어졌습니다. 70~80년을 자라도 키 10m에 지름 20cm를 넘지 못한다고 하니 500~600년 이상의 세월을 짐작케 합니다. 장정 서너 명이 겨우 들 수 있을 정도의 무게로 제주도에서 직접 공수해 왔습니다. 당시 보험료만 1,500만원을 들여 운반했으니, 이 테이블의 값어치는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켄싱턴 호텔 6층 (프레지덴셜 스위트)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대통령 전용 사우나 컨텐츠 영역

대통령 전용 사우나 1978

대한민국 최초의 비데와 1인 사우나실

대통령의 방 '프레지덴셜 스위트'에는 오직 박정희 전 대통령만이 사용할 수 있었던 프라이빗 공간이 있습니다. 바로 1인 사우나 시설과 파우더룸이 갖추어져 있는 개인 욕실입니다. 가로 130cm, 세로 110cm, 높이 170cm의 아늑한 사우나 룸은 성인 한 명이 아늑한 휴식을 즐기기에 적당하며 이 사우나실 때문에 '프레지덴셜 스위트'를 다시 찾는 고객이 있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경험을 제공합니다. 물을 부으면 은은한 향기가 나는 이태리제 맥반석으로 둘러싸여 있어 나라의 정무에 지친 대통령의 심신을 달래 주기에도 충분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비데 역시 '프레지덴셜 스위트'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권이며 당시 최고급 미제 브랜드인 'American Standard' 사의 욕조와 세면대 또한 그때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켄싱턴 호텔 6층 (프레지덴셜 스위트)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근면, 성실, 인내 컨텐츠 영역

근면, 성실, 인내 1968.11.28

박정희 제5~9대 대통령의 휘호

근면 '부지런히 일하며 힘쓰다', 성실 '정성스럽고 참되다', 인내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참고 견디다'라는 뜻입니다. 프레지덴셜 스위트 응접실에 걸려있는 휘호로 1968년 11월 28일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쓴 것입니다. 이 휘호는 6,7대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대한민국 헌정회 원로를 지낸 최두고 의원을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휘호가 쓰여진 1968년은 우리나라의 두번째 고속도로인 경부고속도로의 기공식이 열렸던 해입니다. 이처럼 빠른 경제성장의 저변에는 근면과 성실, 인내의 정신 있었습니다. 이 중 근면은 박정희 대통령이 가장 중요시한 덕목으로 새마을 운동의 3대 정신인 '근면, 자조, 협동'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평생 근면과 성실, 인내를 실천하고자 해던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 요직을 담당하고 있는 최두고 의원에게도 이를 중이 여길 것을 당부하는 간절한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켄싱턴 호텔 6층 (프레지덴셜 스위트)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대통령의 테이블 컨텐츠 영역

대통령의 테이블 1987

박정희(1917~1979) 대통령이 식사하던 테이블

박정희 대통령은 프레지덴셜 스위트에 묵을 때 항상 전속요리사를 대동했다고 합니다. 그린 컬러의 타일로 단장된 주방은 아담하지만 그 당시 최고의 시설을 갖춘 서양식 주방이었습니다. 이 곳에서 대통령 전속 요리사가 직접 요리를 했으며 완성된 요리는 다이닝 룸으로 서빙되었습니다. 전면 방탄 유리를 통해 권금성이 마주보이는 다이닝 룸에는 대통령과 가족들이 식사 했던 테이블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 테이블은 호텔이 지어진 1987년에 제작 된 것으로 은은한 아이보리 컬러와 고풍스러운 금장 장식이 돋보입니다. 가로 235cm, 세로 103cm로 8인이 함께 식사 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 또한 응접실에는 전용 바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식사를 마친 후 곳에서 간단한 음료를 즐겼다고 합니다. 프레지덴셜 스위트에 투숙하시면 박정희 대통령이 누렸던 품격있는 주방공간을 누리실 수 있습니다.

켄싱턴 호텔 6층 (프레지덴셜 스위트)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한중친선(韓中親善)컨텐츠 영역

한중친선(韓中親善)1965

박정희 제5~9대 대통령의 휘호

'한국과 중화민국이 서로 친밀하고 사이가 좋다'는 뜻입니다. 1965년 박정희 대통령이 중화민국(현 대만)의 건국기념일인 쌍십절(10월 10일)을 축하하기 위해 쓴 휘호입니다. 청나라의 침공으로 나라를 잃고 300년간 시달림을 받아온 한족은 1911년 10월 10일, 쑨원을 주축으로 한 신해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그 결과 중국역사상 2000년간 계속된 전제정치에 종말을 고하며 민주공화정치의 중화민국을 탄생시킬 수 있었습니다. 1966년 2월 타이완을 직접 방문하기도 한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과 대만, 양국간의 수교를 중시했습니다. 쌍십절을 축하하기 위해 직접 쓴 '한중친선' 네 글자는 당시 양국간의 우호적인 분위기를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켄싱턴 호텔 1층 '가얏고'에 전시중입니다.

육영수 여사의 편지 컨텐츠 영역

육영수 여사의 편지 1969

여고생에게 보내는 친필사인 답장

1969년 11월 20일 육영수 여사가 여고생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육영수 여사의 사진을 보내 온 여고생 황정숙 양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직접 쓴 답장으로, 수동 타자기로 깔끔하게 정리된 문장과 편지 아래쪽의 친필 사인에서 영부인 특유의 세심함을 보여줍니다. 육영수 여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부인으로 교육자이자 사회사업가로 활동했습니다. 이 편지를 쓰던 해인 1969년 4월에는 어린이 복지재단인 육영재단을 설립했으며 어린이날에 맞춰 '어린이 대공원'과 '어린이 회관'의 건립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육영수 여사에게는 매일 한 묶음씩의 진정서나 호소문이 배달되었다고 합니다. 편자마다 담긴 발신인의 사연을 눈여겨 읽고 필요한 경우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것으로 유명해, 역대 퍼스트레이디 가운데 온화하고 정갈한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습니다.

켄싱턴 호텔 1층 '가얏고'에 전시중입니다.

대통령 친필 편지 컨텐츠 영역

대통령 친필 편지 1976~1977

장관에게 보낸 업무편지와 그의 부인에게 보낸 안부 편지

21대 교육부 장관을 지낸 유기춘 장관과 그의 부인에게 보낸 3통의 편지입니다. 유기춘 장관은 서울대 문리대 정치과를 졸업하고,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원, 부산대 명예 박사를 받은 인물입니다. 1948년부터 전남대 의대에서 교수, 총장을 지냈으며, 녹조소성 훈장과 국민 훈장 모란장을 받았습니다. 유 장관은 1976년 9월, 뇌졸증으로 졸도해 5년 6개월간 식물인간 상태로 치료를 받다 1982년 62세로 별세했습니다. 그는 특유의 결단력으로 신임을 받았으며, 1976년 9월 30일에는 박 전 대통령이 예고 없이 병문안을 가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이 보낸 업무 편지는 1976년 작성된 것으로 군더더기 없는 내용과 깔끔한 필체에서 대통령의 성품을 엿볼 수 있습니다. 유기춘 장관의 아내 기정옥 여사에게 보낸 안부 편지는, 1976년 10월 19일과 1977년 2차례에 걸쳐 쓰여진 것으로 유 장관의 병환을 걱정하고 있는 가족들을 위로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켄싱턴 호텔 1층 '가얏고'에 전시중입니다.

대도무문(大道無門) 컨텐츠 영역

대도무문(大道無門)

김영삼 제14대 대통령의 휘호

'큰 길에는 문이 없다' 는 뜻으로 큰 뜻을 품은 사람에게는 어떠한 고난도 장애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남송(南宋) 무문혜개(無門慧開, 1183~1260) 스님의 48개 화두를 모은 불서 무문관(無門關) 서문에 나오는 송(頌)입니다. 김 전 대통령은 창해 김창환 선생에게 사사했으며, 5공 시절 이 휘호를 수백 번 이상 쓰며 마음을 다잡은 것으로 알려집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그의 글씨체를 '대도무문체' 로 명명했을 만큼 즐겨 쓰는 휘호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재임 기간에는 대도무문이 새겨진 손목시계를 제작하여 배포했으며 1993년 11월 호소가와 일본 총리가 방한했을 때는 휘호가 새겨진 액자를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체는 전통적인 필법에 구애 받지 않는 필체로 자유분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켄싱턴 호텔 1층 '가얏고'에 전시중입니다.

송백장청(松柏長靑) 컨텐츠 영역

송백장청(松柏長靑)2005

김영삼 제14대 대통령의 휘호

'소나무와 잣나무는 오래도록 푸르다'는 뜻입니다. 김 전 대통령이 '2005 서울서예비엔날레' 명예대회장이 되면서, '원로서예가초대전'을 위해 출품한 휘호입니다. 2000년 12월에 있었던 김 전 대통령의 부산 서도전에서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가 구입을 원했으나 송백장청(松柏長靑)대신 民主主義(민주주의)를 전달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흔히 최고의 절개와 인품에 비유하는 뜻으로 쓰입니다. 2010년 정부 중앙청사에 전시된 '송백장청'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쓴 휘호입니다. 맹형규 행안부 장관의 요청으로 제작된 것으로 공직자들이 소나무와 같이 한결같고 청렴한 자세로 국민을 위해 봉사해 달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켄싱턴 호텔 1층 '가얏고'에 전시중입니다.

행복 (幸福) 컨텐츠 영역

행복 (幸福) 1948

독립운동가 김구의 휘호

'복된 좋은 운수. 생활의 만족과 삶의 보람을 느끼는 흐뭇한 상태' 라는 뜻입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29년(1948) 6월 23일. 72세의 백범 선생이 임시정부 판공실에서 남긴 휘호입니다. 행복은 선생이 평소 즐겨 쓰시던 단어입니다. 해방 후 선생의 거처인 경교장에는 동네 아이들이 놀러 오곤 했습니다. 선생은 '너희들이 살아갈 대한민국은 행복한 나라이기를 바란다'며 '행복' 을 휘호하여 아이에게 선물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선생의 휘호를 보면 획에 떨리는 듯한 굴곡이 남아 있는데 이러한 선생의 휘호체를 일러 '떨림체' 라 합니다. 1938년 3월 7일 저녁, 후난성 장사에서 독립단체의 통합을 논의하던 중 일본 경찰에 매수된 이운환에게 저격을 당했습니다. 이 때 심장 근처에 총탄을 맞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으나 후유증으로 심한 수전증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떨림체'가 탄생하게 되었고 선생은 자신의 필체를 가르켜 '총알체'라고 농하였다고 합니다

켄싱턴 호텔 1층 '가얏고'에 전시중입니다.